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글랜드 내전 (문단 편집) === 1차 내전 === 1642년 여름, [[찰스 1세]]는 외국인 [[용병]]들을 바탕으로 조카들[* 누나 [[엘리자베스 스튜어트]]의 아들들인 라인 공자 루퍼트와 모리스. 정작 엘리자베스의 큰아들인 [[카를 1세 루트비히|카를 루트비히]]는 의회파에 가담했다.]이 이끄는 강한 군대를 앞세우며 내전을 개시했다. 반면 의회파의 군대는 대부분 토호들이 각 지방에서 긁어모은 오합지졸들이었으며, 그나마 자기 고향 밖으로 출정하기를 꺼렸다. 하지만 왕당파 역시 그리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라서, 양측은 '''[[엣지힐 전투]]'''에서 졸전을 벌이는 등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. 1643년, 잉글랜드 의회와 스코틀랜드가 <엄숙동맹>을 체결하였다. 의회는 스코틀랜드에 장로교를 국교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. 그러다 1644년 '''[[마스턴 무어 전투]]'''에서 대활약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[[올리버 크롬웰]]이 이듬해 '신모범군'[* New Model Army. 간혹 '신형군'이라고 한다. 이 신모범군 중 기병대는 Ironside로 불렸는데, 국내에서 흔히 '[[철기대]]'로 알려져 있다.]을 조직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. 신모범군은 엄격한 규율과 훈련, 그리고 높은 사기를 갖춘 군대였다. 특히 그들의 높은 사기는 종교적 열정의 힘으로써, 싸움터에서도 늘 《[[성경]]》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[[찬송가]]를 불렀다.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적인 왕당파 군대가 곧 [[사탄]]의 군대이며, 자신들은 "곧 이루어질 것이 분명한" 재림 예수의 [[천년왕국]]을 이룩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다. 이들이 연거푸 승리하자 크롬웰은 의회에서 점차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, 그가 이끄는 급진파가 온건파를 누르고 의회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. 결국 '''[[네이즈비 전투]]'''에서 참패한 찰스 1세는 대세가 기울자 스코틀랜드로 도망쳐 투항했으나, 찰스 1세를 싫어하던 스코틀랜드는 400,000 파운드를 받고, 크롬웰에게 찰스 1세를 인계해버린 후 잉글랜드에서 철수해버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